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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다고는 생각하지만 닮고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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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해보며 든 생각의 일부를 써볼까.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건강상의 이유로 내가 이 일을 조만간 멈춰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확신이 되고 있으며, 또 하나의 이유로 절대적으로 이 일을 기피해야겠다고 확신한 이유는 '좋은 아버지들', '멋진 아버지들'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40대 초중반, 이미 10여년 전에 결혼들을 하셨다. 아내분들은 아이들과 둘 또는 셋이서 지내곤 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 아버지는 금요일 밤 또는 토요일 저녁에나 집에 오시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집을 나선다, 자신들을 키우기 위해. 엄청나게 특별한 일이 있거나 명절이 아니라면 평일에 아버지의 실제 모습은 볼 수 없고, 스마트폰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만질 수 없다. 안길 수도, 안아줄 때 닿는 따가운 까끌까끌한 수염조차 느낄 수 없다. 장을 볼 때 아버지의 두꺼운 손가락과 손바닥보단 어머니의 여리지만 굳은 살이 박힌 손가락과 손바닥을 잡아야 한다. 짐이 무거워서 낑낑대는 어머니를 봐야할 수도 있다. 모든 집안일은 어머니만 해야 하고, 안방 침대는 어머니에게 너무나 크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상이, 그들에게는 특별한 일상이고, 사치스런 일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돈은 꽤 괜찮게 번다. 먹고싶은 것이 있다면 사줄 수 있고, 사고싶은 것이 있다면 또한 사줄 수 있을 것이다. 생일에는 케이크를 사줄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나 해외여행을 가고 싶은가? 아버지는 충분히 보내줄 능력이 된다, 돈 때문에 고생할 일은 크게 없다, 다만 그 돈이라는 것이 아버지가 자신을 팔아가면서 집으로 보내는 돈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길.

함께 그 귀한 순간을 보낼 수 없다. 기념사진이나 졸업사진을 찍을 때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없을 것이고, 계좌 잔고로만 볼 수 있을, 식당이나 호텔 예약자의 이름에만 올라와 있을 아버지의 이름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졸업식날 함께하지 못하는 아버지, 내가 축하받으며 빛나는 날에 함께하지 못할 아버지는 과연 존경스럽기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원망이 더 많았을 것 같은데. 사랑하지 않아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에 떠나야 하는 그 뒷모습이 누군가에겐 박수쳐줄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 박수 따위는 필요 없는 이유가 뭣일까.

바쁜 와중에도, 바쁘지 않은 때가 되면 집으로 영상통화를 걸어 아내와 아이의 안부를 묻는 아버지들, 거기에 경제력도 뒷받침해주니, 이 얼마나 능력있고 멋진 가정적인 아버지인가, '온라인 상으로는'.

일상을 보내고 일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이들이 나의 자랑이라며 하루를 버티기도, 살아가기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배우고 싶지만,

가정을 책임진다는 명목 하에 가정을 떠나 일 주일 또는 이 주일에 한 번 가정으로 돌아가서 하루, 이틀 간의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또 긴 시간을 가족과 떨어져서 보내야 하는 의도를 했든 말든 집을 비우고 떠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절대. 난 그런 가정에서 자라보지 않았고, 후대에도 그런 가정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난 철저하게 돈과 복지만 보고 이 기업에 입사했다. 잘 되지도 않는 토익공부가 하기도 싫었고, 토목기사라면 현장에 나가서 일의 진행과정을 보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세상에 돈과 괜찮은 복지보다 중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더라는 것.

많은 월급도, 이러저러한 복지도 좋긴 하지만 내겐 가족이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잠시 망각했다. 나를 위해 평생을 바친 부모님과 친할머니가 서울에 계시고, 그 외 너무나 소중한 사람과 사람들이 서울에 있다. 돈을 바라보며 나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기보다는 조금 덜 벌지라도 소중한 가족과 함께 나이들어가는 것이 내겐 비교할 수 없이 가치있음을 3개월만에 발견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건강의 악화 때문도 있지만 어쩌면 난 지금 향수병이 빡세게 든 것일지도 모르겠고, 미래에 대한 큰 두려움이 생긴 것일지도.

난 당신들을 존경하지만 존경하지 못하기도, 존경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큰 도움을 받았다. 조만간 큰 결정 하나 내려볼까.

때로는 저 멀리 빛나는 별보다도
당장 눈 앞에 보이는 가치없어 보이는, 달빛에만 빛나는 조약돌이 더 가치있어보이는 것은 왜일까.

어차피 똑같은 돌덩어리인데, 참 다르다.

:)


#일상 #생각 #교훈 #반면교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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