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이 지나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상한 것은 미역국만이 아니었다.
지난 달 29일, 생일이라는 것을 보냈고, 어머니는 늘 그랬듯 나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생일 당일에도 먹었지만 다음 날에는 SJ, SY, YJ와의 행아웃이 있었기에 아침을 과일로 간단히 먹고 미역국은 먹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어머니가 나 먹으라고 인덕션에 올려놓고 나가신 줄도 모른 채로 안먹고 못먹었다가 맞는 표현일지도. 어쨌거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30일 신나게 저 3친구들(a.k.a. 또래 베프들)과 하루를 보내고 자정이 다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그러고 주일 아침이 되었다.
31일, 주일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러 가는데, 부엌에서 이상한 쉰 냄새가 나더라는 것, 이게 도대체 뭔가 싶어서 인덕션 위에 올려져 있던 냄비를 가져다가 뚜껑을 열어봤더니 미역국이다. 일단 냄새가 너무 톡 쏘고 토할 것 같아서 바로 버리고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또 평범한 주일 일상을 보내고, 또래모임을 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집에 왔다.
집에 오자마자 준비해놓은 짐을 싸다가, 나는 어머니한테 왜 미역국을 상온에 오래 놔두냐고, 상한 것 같아서 내가 버렸다고 말했더니 오히려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 "너 먹으라고 토요일 아침에 데워두고 나갔던건데, 설마 그거 안먹고 냉장고에도 안넣어놨냐"는 말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몇 마디 '잔소리'를 추가로 하셨지만 나는 더운 날에는 그런거 미리 꺼내놓지 말고 냉장고에 뭐 있다고만 말하면 내가 알아서 필요하면 먹을테니깐 자꾸 뭘 꺼내놓지 말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내가 주일 아침에 버렸던 나의 생일 미역국이 마지막 그릇이 아니었던가. 내가 고기를 좋아하기에 미역국에 소고기를 항상 많이 넣어주셨던 나의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시간과 땀이 들어간 정성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비싼 소고기를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그것만 아쉬웠다.
그리고 1일, 첫 출근을 앞두고 아침 5시에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는 함께 나의 첫 근무지인 청주 현장 사무실로 향했다. 내려서 인사를 하고, 일을 배우고, 일을 하며 지난 한 주를 살았고, 마침 토요일 근무가 없던 지난 주 금요일, 청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왜인지 모르게 자꾸 어머니의 미역국이 생각났다. 이제는 매일 집에서 출퇴근하기 어려운데, 내년 내 생일날이 되면 나는 생일 당일에 어머니의 미역국을 맛볼 수 없이 도로 공사 현장에서 땀의 맛과 사회의 맛을 보고 있을텐데 왜 당신의 마음을 이제서야 생각해보게 되었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나 그것에 조금이라도 보응하는 것엔 왜이리도 많은 노력과 암기가 필요한 것일까. 나도 밖에선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희생과 사랑이 그리 힘들지 않은 사람인데 가장 가까운 두 분께는 뭐이리도 표현하는 것이 힘든 것일까. 있을 때 잘하자는 말을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되뇌이는 나지만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이러는걸까.
마침 노을도 지고 있었고, 달리는 버스, 사람들은 몇 없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그냥 감수성이나 폭발시켜(?)보았다, 나름.
상한 것은 미역국만이 아니었다.
8/5, 2022.
-p.s. 라디(Ra.D)의 "엄마"라는 노래가 떠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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