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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된 병아리 토목기사의 삐약삐약.

잡다한 일상, 잡다한 생각

by Justin Yoon 2022. 8.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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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라는 것은 여러 기점을 통해서 점진적이지만 크게 바뀌는 것 같다.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대학으로 진학하거나 또 다른 어느 길로 가게 될 때,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진로를 찾아서 갈 때, 그리고 취업했을 때 등과 같이 나 또한 크고 작은 관계의 변화를 겪어보곤 했다.

그리고 어제, 콘크리트 실험을 하러 현장에 나가서 레미콘 트럭을 기다리던 중 한 부장님과의 짧은 대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다. 대화는 겨우 10~15분 남짓이었지만 퇴근하고 저녁을 먹고 카페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시간 내내 앞으로의 방향성과 계획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만 4주차 직장인, 이제 겨우 한 달 현장직 토목기사로 일을 해보면서 느낀 것은 나는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를 많이 모르는 상태였다는 것 - 주변 사람들이 얘기해줬던 대로 내가 사람을 많이 좋아했구나 싶었다.

객지생활, 그리고 외국인노동자와 같은 일상. 일터에선 온갖 지원을 받으며 돈을 열심히 모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에게로 돌아가서 돈을 쓰는 외화벌이를 위해 고향을 떠나 온 외국인노동자와 같은 이 생활이 나의 상황이 아닐까 싶다. 건설 현장의 현장직, 이 업계에서만 30년을 넘게 종사해 오셨던 한 부장님은 지금이야 고향이 그립고 여러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겠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고 가정이 생기면, 그리고 체력적 한계가 오면 지금 내가 돌아온 이 곳이 고향이 아닌 주중을 보내는 그곳, 현장이 고향이 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가족이 된다는 말이 순간 너무 겁이 났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까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많은 사람들을 나중엔 내가 내 의지로 떠날 수도, 일에 치이고 지쳐 힘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 내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고 예상했으며 각오를 하며 입사했지만 경험자로서, 인생과 업계 선배로서 진지하게 그런 말을 해줬을 때 그 느낌이 참 묘했다.

왜 사람들이 건설현장직으로 오려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당연히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사용하는 언어가 거칠고 죄다 남자들 뿐이며, 도심 속의 편의를 포기해야 하는 것,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객지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 등이 단순히 월급을 많이 주고 복지가 꽤 괜찮은 '금융 치료'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 같기도. 난 주말마다 보러 가야 할 사람들이 많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부장님 왈, "그렇다면 서울/수도권에서만 현장을 돌거나 아니면 사무직으로 옮기는 것도 같이 고민을 해봐라. 하지만 현장직에 남아서 계속해서 일을 배우며 성장하기를 권한다. 모르거나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서 물어보라, 가능한 전부 대답해주겠다".

그 부장님과의 대화 시간이 짧지만 길게 느껴졌다. 그리고 정말이지 '자처해서' 그분과 밥을 한 끼 따로 하며 조언을 구하고 싶어졌다. 그런 선배와의 야근은 얼마든지 환영이다.

취직 전, 나는 주변인들에게 별 것 아니라는 듯 "현장직 나가서 15~20년 정도는 일 좀 하고나서 내 기업 세워야죠"라는 말로 시간이 금방 지나갈 것처럼, 마치 나는 이미 어른이고 확정된 계획이 있는 사람처럼 말하고 다니긴 했지만 먼저 사회생활을 경험해 왔던 주변인들은 도대체 어느 생각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었을지. 아마 어이가 없었거나 치킨이 될 운명인 병아리가 삐약거리며 꿈을 논하는 것이 귀엽거나 하찮게 보였을지도.

나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어리고, 약하고, 지혜롭지 못하고,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정면돌파 - 정면박살을 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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