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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간 한 사람 밑에서 일한 사람. 수고 많았어요.

잡다한 일상, 잡다한 생각

by Justin Yoon 2022. 12. 26.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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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22. 21년, 그리고 이제 마침표를 찍기까지 걸린 시간. 당신의 노고와 새로운 도전에 미리 감사드린다. 박기사,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제 당신이 떠나면 몇 명 없겠구나.


우리집에서, 그리고 우리집을 위해 일하던 사람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아버지 밑에서 일해주던 사람이었겠구나. 운전기사로 21년, 정확하게 21년을 채우고 떠나는 당신, 누군가의 아버지이지만 남의 아들을 더 오랫동안 태우고 알고 지내던 지난 날들, 그 기분이 어땠을까. 그러나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보지 못했던 이유는 나와 그는 그리 가깝게 지내진 않았으니깐. 우리집을 위해 일하기보단 아버지 회사의 한 명의 직원에 불과했으니깐. 그럼에도 가끔 급한 일이 있을 때 달려와서 도움을 줬던 그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을 앞뒀단다. 내 아버지 곁을, 그리고 우리집을 떠나겠다고 추석 전에 말했을 때, 올해까지만 일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비록 그와 쌓인 정은 없지만 그래도 퇴직금과 선물로 뭐 하나 좋은 것 해주면 어떻겠냐고 아버지에게 말씀을 드려봤고, 결국 퇴직금과 최근까지 열심히 운전해줬던 그 차를 선물로 주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에겐 비밀이지만, 아버지는 긴 세월 고생해준 박기사를 위해 달에 50만 원 남짓한 금액을 따로 더 모으셔서 20년을 채우면 좋은 차를 하나 사주고 나머지는 그 아들의 용돈으로 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셨단다. 그리고 12월 25일까지만 우리집 사람으로 일을 했고, 그의 모든 업무는 끝이 났다. 이번 주도 일을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특별한 시기인 만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라며 한 주를 그냥 통째로 유급 휴가를 주어버렸다.

이직, 그리고 사회초년생. 여러 군데를 면접보러 다닌다는 것을 어찌 알게 되었는지, 아마도 당신의 대표님과 대화하다가 아들이 면접보러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겠지만 아직 내가 차가 없으니, '조카'가 면접을 다니는 것이 체력적으로 피곤할 것이니 휴가를 반납하고 나를 위해 운전을 해주고 싶었단다. 나도, 아버지도 그러지 말고 쉬라고 했지만 기어코 아침 8시부터 우리집 주차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당신, 그리고 하루종일 운전으로 고생해주고 이제서야 퇴근한 당신, 남은 면접도 모두 함께 하겠단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겠단다. 거 참... 고맙긴 했다. 그래서 상석에 앉지 않고 조수석에 앉아서 같이 동행했다.

대화를 하는데, 이런저런 대화가 오고 가다가 지난 21년 간 어땠는지, 힘들진 않았는지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의 대답은 쉽진 않았지만 자기 인생과 가정을 한 사람에게 걸고 21년 간 한 사람 밑에서 일한 것으로 다른 설명이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는 간접적인 대답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다시 윤대표와 일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자신있게 그렇다고, 다시 시작해도 내 아버지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박기사. 내 아버지, 나한테만 존경받는 사람은 아니었구나.

그는 뒤에서 나를 보며 조카라고 불러왔단다. 순간 속으로 내가 왜 당신 조카냐는 생각을 했지만 아버지와 박기사의 관계를 생각해보니 몇 초 안가서 바로 수긍했다. 말도 별로 없고 무뚝뚝해서 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 생각보다 무언의 섬김과 사랑을 꽤나 받고 있었구나. 고마웠다. 그리고 이제 알아줘서 미안하다.

올해는 많은 선물을 받았다. 정말 소중한 선물이 되어준 환영받을 사람들도 있었고, 이제 2023년이 되면 그대들은 내게 익숙한 사람들이 되어 사랑을 더 많이 받겠지만 반대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냈다. 여러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는 올 한 해, 그리고 연말. 당사자 옆에서 이 글을 쓰니 참 느낌 오묘.

축구선수, 수영선수, 럭비선수를 거쳐 평범한 대학생과 지금의 기술자가 된 나의 모습까지 그 과정을 전부 지켜본 몇 안되는 사람, 떠난다니 뭔가 참... 음... 그러하다.

:)

-p.s. 아직 완전히 헤어진 거 아님. 내일이랑 수요일도 면접 있음. ㅋ ㅋ

#일상 #생각 #감사 #수고 #운전기사 #노동 #21년 #면접 #이직 #연말 #오묘 #가족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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