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이론이 아니라 고백이다."
한 형님과의 통화, 그리고 신학을 배우며 누렸던 유익이 뭐였냐는 JY의 질문에 그 형님이 내게 대답해준 네 단어로 된 짧은 문장은 집으로 가는 길을 걷던 한 청년의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그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말, "신학은 이론이 아니라 고백이다."
이성과 논리를, 공식과 일관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며 맹목적인 것을 멀리하려는 이 사람의 상식에 깊게 침투했지만 결코 내쫓고 싶진 않았던, 아니 그럴 수 없었던 네 단어로 된 강력한 문장.
정말 맞는 말이다. 믿음에 이르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내 멋대로 정의하고 제한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그저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하나님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 아닌 그저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하나님이라는 분이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
세 개의 위격으로 계신 분께서 세 분이 아닌 동시에 한 분으로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이 참 모순적이면서도 언젠가 나도 모르게 조금씩 커져가는 것, 생각해보면 철저하게 외부의 누군가가 내 안에 항상 내주하면서 공급해주지 않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을 일, 그것을 믿음이라고 하지 않던가.
위대한 스승에게서 직접 듣는 명강의라 할 지라도,
위대한 누군가가 쓴 책을 직접 공부하고 다 이해했다 할 지라도,
어떤 논리에도 반박할 수 있는 변증법을 발견했든 발명했든 뭐가 되었든 결국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위대한 학문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의 그리스도도 아닌 '남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어찌 가장 고상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욥이 이유를 알 수 없을 고난에 처했을 때도 그 이유를 하나하나 다 알려주지 않으셨듯 나의 삶에서도 내가 여러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당장의 해결책이나 그 원인을 다 알려주지 않으셨지만 그저 나와 함께하는 나의 하나님이심만을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이 답답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무논리'는 어디다가 써먹으라는 뜻인가 싶었지만, 결국 궁극적인 회복과 안식, 그리고 구원을 통해 당신님의 우리의 영원하신 하나님되심을 '그저' 믿게 하셨다는 것. 당신은 학문에 제한받지 않는 분이심을 잊고 있었다. 그말인즉슨, 당신이 스스로를 알려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당신을 결코 알 수 없다는 것.
믿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정의를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감정에 속한 영역도 아닌, 그렇다고 이성에만 속한 영역도 아닌, 경험과 기억같읕 데이터에 속한 영역도 아닌, 믿음은 그저 내가 얻어낼 수 있는 것도, 채굴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닌 철저하게 공급을 받아야만 가능한 '은혜의 영역'이 아닐까 싶은 생각. 오늘 밤 자기 전, 그리고 내일 하루를 시작하면서 나는 그 은혜의 영역을 구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가며 믿음을 구하곤 있는가.
"신학은 이론이 아니라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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