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헐레벌떡 하남으로 달려갔다. 나에겐 고향이 두 곳인데, 하나는 당연히 서울이고, 또 하나는 마닐라이다. 그리고 두 번째 고향에서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사람, 그리고 지금은 몇 안 되는 그곳에서의 한인들 중 한 분, 한 집사님이자 현재는 그곳에 있는 미션스쿨의 체육 코치로 계신 분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을 했다. 이것은 갈비탕이다.
28살, 이제는 20대 중에서도 진짜 나이가 많다. 내일 모레 서른이 아니겠는가. 3년차 사회인이 되어 처음으로 밥을 사 본 Justiny. 지금까지 수십 번을 얻어먹고 다녔지만 이 한 번 밥을 사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지, 겨우 4만원 남짓하는 밥값을 계산하는데도 마냥 마음이 쉽지 않으면서도 기쁘고, 뭔가 묘했다. 신기한 감정이라서 집에 와서 꼭 기록을 남겨야겠구나 싶었다. 지난 날들 JY가 얻어먹은 밥값은 어느 누구에게서든 수십, 수백, 수천 이상에 달할텐데, 난 정말 많은 섬김을 받아먹으며 자랐고, 지금도 그러고 있구나 싶었다.
동역자인 동시에 신앙의 스승, 그리고 큰 범위에서 운동선수였던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 분과의 교제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이제 다음 주면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가시기에 미리 인사를 하고, 다음에 다시 '우리의 고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곳은 선교지이기도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봤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곳은 보금자리이자 쉴 곳, 마음의 고향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저마다 비전이 있겠지만 같은 곳을 섬기는 자로서 많은 종류의 비전이 겹친다는 것은 한편으로 참 반가울 수밖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사람은 내게 참 많은 쉼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함께 지냈던 현지 교회 한인들이 꽤나 많이 있었지만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떠나가고 사실상 몇 남지 않은 우리 한인들, 과연 다시 모여서 같은 비전이나 같은 방향을 두고 미래를 논하는 날이 또 올까. 그래도 좋고, 아니면 뭐 어쩔 수 없고. 다만, 각자의 자리에서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하루를 살아가며 자기 갈 길을 향해 잘 달려가길 바랄 뿐.
마닐라라는 선교지에 있든, 어느 곳에 있든 내가 가는 모든 곳과 내가 있는 모든 곳이 선교지가 되고 전도지가 되기를. 비록 이 사람에게서 딱히 배울 점이 없겠지만 그래도 항상 함께 하시는 가장 거대한 배후를 기억하기. 존 파이퍼가 "열방을 향해 가라"라는 책에서 말했듯 선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배 그 자체이길. 그렇기에 어느 선교지에 있든 그곳이 바로 당신님을 예배하는 곳이길.
조만간 마닐라에서 건강하게, 그리고 기쁘게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난 이곳에서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조금 있다. 이 아이들 때문인지 덕분인지, 아직 당장은 이 교회와 서울을 떠날 생각이 없다. 떠날 수 없다고 해야하나.
오늘 하루도 의미있고 인상깊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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