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이라는 말, 정말이지 동의한다. 3주차, 그리고 지금까지 벌써 5번이 넘는 회식의 시간을 가지면서 집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나갈 수 없는 치킨집은 정말이지 내가 치킨을 더더욱 멀리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기도.
7시 출근, 6시 퇴근. 건설현장 관리자, 기술자요 기사로서 근무하는 이 곳은 돈만 보면 참 좋아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 다른 업계 대비 초봉을 조금 더 높게 주는 이유는 분명 뭔가 있다. 바로 시간이라던가, 도심에서 떨어진 외딴 곳이라던가 하는 요소들이 있고, 평생을 서울에서만 살아온 나로선 충청도에서도 나름 대도시라 하는 곳의 시골 현장에서 일하면서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답답하다.
나쁘지 않은 연봉 조건에 복지 - 투룸인 집과 출퇴근용 차량, 그리고 생필품과 삼시세끼 전부 지원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좋을 수도, 그리고 내게도 딱히 나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내가 이 지역 사람이 아닌지라 교회나 그 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엔 너무나 많은 장애 사항이 많으며, 내가 큰 맘을 먹고 올라가야하는 비중있는 사람과의 약속인 정도가 아니라면 주중에 서울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다음 날 출근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빡세다.
그래서 나는 퇴근하면 주로 카페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거나 일찍 잠을 자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곤 한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사람들과 통화를 하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고생한 나에게 4천원짜리 음료수를 하나 사주고 싶어서 가기도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청소나 빨래 등과 같은 집안일을 하면서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일찍 잠을 자기도 하고. 다른 직장인들은 퇴근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 퇴근 이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소중했다.
그렇기에 퇴근 이후 원치 않았던 회식은 돈이나 자산을 주지 않는 이상 필사적으로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냥 가자길래 쫄따구의 입장에서 거부할 수 없고 또 웃는 연습을 하며 기분이 좋아서 기꺼이 따라가는(=끌려가는) 사람처럼 자리에 함께 하곤 한다. 돈과 자산이 아니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봤지만 막상 돌아와서 누워서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회식은 퇴근 이후에 벌어지고, 업무의 연장선이 맞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과연 나는 시간을 잃기만 하는 것인가 생각해봤을 때 마냥 잃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업계에서 15년, 20년, 30년을 몸 담으며 치열하게 살아왔고 살아남은 선배들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이 겪은 고충과 그들의 나름의 노하우, 가족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도때도 없이 '라떼'를 시전하며 너희는 이래라, 너희는 이러지 마라 등과 같은 첨언을 날리기도 하는 당신들이 정말 잠깐이나마 꼰대로 단정짓고 배울 점 없고 말만 많고 입이 거칠며 술담배만 즐겨하는 기러기 아빠들로 생각을 했던 내 지난 2주 간의 생각을 이제는 접고 당신들을 선배와 선생으로 인정한다. 막말로 삼촌에서 아버지 뻘 되는 당신들의 조언을 지금 아니면 어디 가서 직접 들어볼까.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3주차 병아리 토목기사, 같은 현장이 아니라면 대화도 잘 통하지도 않을 것이고, 들어도 더 못 알아듣는다.
아니, 오히려 당신들에게서 배울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신들은 내게 교훈과 반면교사 모두를 보이며 내가 앞으로 조금 더 지혜롭고 강하지만 부드럽게 성장하는 기업가가 되기 위한 거름들을 주기 때문이다. 거름은 냄새가 난다. 그냥 똥덩어리 아니던가. 그렇지만 동시에 거름은 훌륭한 자원이다. 없다고 해서 식물이 생장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지만 만약 있다면 받지 못한 것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자라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모두가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확률이 높아진다. 무한한 성장을 도모하는 기업가가 될 이 사람에겐 어쩌면 당신들과 보내는 쉽지 않은 시간, 업무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게 되는 이 회식 시간과 당신들과의 티타임, 또는 차 안에서 어색하게 둘이서, 셋이서 이동할 때 하는 이야기와 내게 주는 채찍과 당근 그 모두가 내게 그런 거름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정말이지 당신들은 나의 성장에 '거름', '도움'이라고 봐도 되겠다.
그렇지만 너무 긴 시간의 회식은 쪼오금 힘들다, 꽃과 나무가 모든 거름을 주는대로 다 수용하지는 못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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