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저리게 그립다. '가슴에 깊게 사무친다'라는 말, 어쩌면 최근 한 달 간 크게 경험하는 것 같기도.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왔다가 이제 보통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준비하는 지금, 지난 5월 점심을 간단히 먹으면서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던 이곳, 한 Ave.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반드시 기록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급하게 키보드를 두들겨본다.
이후엔 친구들과 있었던 좋았던 추억들을 기록으로 남겨볼 예정인데, 그거야 좋은 기억이고 이미 기록물을 남겨놨으니깐 기억이 가능하겠지만 지금 막 피어오른 이 감정을 기록하지 못하면 나는 마닐라 마카티에서 갖고 있던 마음을 서울로 가져가지 못할 것이기에, 그 감정을 또 잊고 살아갈 것 같기에 추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후닥딱 키보드를 꺼내서 두서 없이 써본다.
일부러 짜맞춘 것이 절대 아닌데, 관성인가, 혼자 와서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를 시키며 돌아가서 할 일들을 정리하다가 문득 떠나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작년 5월에도, 11월에도, 올해 5월에도, 그리고 지금 6월에도 난 여기를 꼭 들르고 있었구나. 왜일까.
정확히 한 달 전, 나는 휴가를 내서 고향에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에서 들려온 비보, 나는 패닉에 빠졌고, 바로 다음 날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샀으나 그것마저 항공 문제로 결국 놓쳐버려서 예정된 시간을 고스란히 보내며 평생의 한을 남겨버렸다. 친구들과의 7~8개의 약속이 있었지만, 1개는 선지불을 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나가고 나머지는 전부 내 상황을 공유하며 양해를 구하고, 불참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호텔과 이 도시에 강제로 '갇혀 있게' 되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거리를 4~5시간 배회해보기도 했고, 술 따위에 내 감정의 흐름을 맡길 수는 없기에 SB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과 케이크 두 조각을 시키며 사치를 부렸다. 그곳에서 몇 장의 종이와 펜을 가지고 이런저런 생각을 끄적여보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여전히 어벙벙하고 패닉에 빠져있던 나로선 뒤늦게 더 크게 밀려오는 죄책감과 후회, 슬픔, 상실감을 경험하면서 사람이 사알짝 미쳐가는 느낌이었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최소한 나와 내 부모님께는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는 얼굴이 아닌 영정 사진으로,
산 사람이 아닌 고인으로,
집이 아닌 사유지의 장지로,
출생년도만이 아닌 생몰연도로,
병원 처방전이 아닌 사망진단서와 화장증명서로,
당신을 애써서 추억하고 추모해야만 기억이 나고 머리에 떠오른다는 것, 이것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그 마음이 얼마나 참으로 힘들었을까. 그리고 지금 다시 밀려드는 생각, 왜 꼭 잃어야만 후회하고 앞으로를 다짐하는가.
그냥 갑자기 당신을 생각하다가 이것 - 이제서야 느끼는 거지만 부모님 외에 절대적으로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은, 나를 위해 끝까지 바보가 되고 계속해서 당해줄 사람이 한 명 떠났구나 싶다는 것. 인생에 몇 없을 내 목숨만큼 귀한 정말 소중한 사람. 나의 낮에는 존재가 잘 느껴지진 않았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내 주변에 있던, 밤하늘을 비추던 정말 큰 별이 하나 졌구나 싶다.
정말 다행인 것은, 당신과 당신의 차남이자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의논하여 사전(死前)에 99%의 재산을 여기저기 기증하고 당신과의 사진이나 여러 추억과도 같은 기록물만을 남겨놔서, 집 한 채 만을 남겨놔서 더욱 당신을 순수하게 추억하고 추모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맘놓고 폭포수를 멈추고 하늘길에 오른다.
그러나 산 사람들은 계속해서 살아가겠다. 그렇지만,
뼈저리게 그립다, 그리고 정말이지 가슴에 깊게 사무친다.
#일상 #생각 #일기 #가족 #후회
#다짐 #사랑 #추억 #추모 #기억
#Sub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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