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06(토) 설교 다시 듣기(눅 18:35~19:10)
누가가 전해주는 관대한 삶 6 - 관대한 은혜로 변화된 삶
(231231 주일 1부 예배, 설교: 이정규 목사)
I. 관대함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 총체적이고 더 깊은 관대함, 자융롭게 변화된 삶에 대해서 살펴보자. 두 명(바디매오;맹인, 삭개오;세리장)의 이야기와 그들을 둘러싼 군중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1. 자기에게 관대하기
- 당시의 맹인들은 걸인들 중에서도 '특권층'이었단다. 이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맹인들은 앞을 볼 수 없어서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구걸밖에 없었는데, 당시 유대 사회에서 그들은 그런 자신들을 돕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며 "도와주십시오ㅜㅜ"라고 하는 현대 사회에서 보이는 안타까운 모습보다도 오히려 당당하게 "하나님께 헌금하시오!"라며 외칠 수 있었단다.
- 본문에서 그러한 나름의 특권층인 맹인 - 바디매오라 하는 자가 보기를 원한다는 고백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큰 위험에 빠뜨릴 것이 너무나 당연해보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가 눈을 뜨게 되어 사회에서 소외될 것이었지만, 그것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만지며 믿을 수 있다는 것, 엄청난 가난과 더 큰 고통이 따라올지도 모르는 그였겠지만, 구주를 알아가는 진정하고 영원한 행복을 놓칠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2. 가난한 자들에게 관대하기
- 삭개오는 돌무화과나무(≠뽕나무, 당시에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에 뽕나무는 살 수 없단다.)로 달려가서 그 나무를 기어 올라간다. 당시 사회의 어른들이 하면 품격이 떨어진다고 하여 절대 하지 않았던 것들 중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달려가는 것과 나무에 오르는 것이 있었단다. 그러나 삭개오는 당시 사회에서 손가락질받고 조롱받을 두 행동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위해서. 안그래도 매국노의 상징인 세리, 그중에서도 그 세리들 중에서도 세리라 할 수 있는 세리장(長)인 그는 만약 사람들 사이에 발견되었고 존재가 드러나면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는데, 그런 그가 구태여 사람이 많은 곳에 혼자 달려가고, 나무를 올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뵙기를 원했다는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설마 만나주겠냐는 '헛된 희망'따위는 품고 싶지 않았던 삭개오, 그러나 그런 헛된 희망을 현실로 바꿔주며 자신의 집에 유하여야겠다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이 장면이 얼마나 드라마같은가. 그저 지나가면서 얼굴이나 보고 싶었을, 멀리서라도 그 인기척만이라도 느껴보고 싶었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이 자신의 집에서 유하면서 먹고 마시고 자기를 먼저 청한다는 것이 그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 삭개오는 자신이 타인들을 속여 취한 것이 있다면 당시 기준인 +20% 할증이 아닌 무려 몇 배로 갚겠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의 정체성이자 전부였던 돈에 대한 통제권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겠다는 고백을 하는 것과도 같다. 그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만지며 믿을 수 있다는 것, 엄청난 가난과 더 큰 고통이 따라올지도 모르는 그였겠지만, 구주를 알아가는 진정하고 영원한 행복을 놓칠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3. 죄인에게 관대하기
- 하나님이 죄인들을 어떻게 대하시길 바라는가 생각해보면, 나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같은 죄인이지만 용서를 받고 변화되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고, 동시에 같은 죄인이지만 철저하게 구분되어서 딱히 변화되지 않고 도태되었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수의 사람들을 볼 때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들에게 관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어주실 정도로 사랑하셨고, 사랑하시며, 사랑하실 것을 조금은 알고 확신하겠지만, 나는 하나님이 모두에게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하는 죄된 소망이 있음을 설교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돌아본다.
-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조차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그리고 관대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관대하게 대하기, 그리고 관대한 사람으로 성화되기를 구하기.
4. 관대하신 구주
-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며 언제나 그분을 바라보기. 긍휼이 풍성하신 분께서 하신 일은 구원 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었으나, 사람들은 그분을 향한 적개심으로 잡아 죽였다, 당시에 가장 극형이라 할 수 있는 십자가형으로 말이다. 놀라운 것은 죄인들의 반응보다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순순히' 잡히시고 죽음을 맞이하셨다는 것, 열 두 군단 더 되는 천사들을 결코 불러내지 않으셨다는 것. 그분은 스스로 약해지셨다는 뜻. '죽일 놈' 삭개오를 향한 긍휼, 더하여 구원을 베푸신 자기 자신을 내던지신 구주께서는 도리어 죽일 놈 취급을 받으셨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그러나 삭개오와 '또다른 모든 삭개오들'을 위한 구원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삭개오'처럼' 취급을 받으시고 아버지께로부터 끊어지셨다. 21C를 살아가는, 그리고 지금 이 메모를 하며 들었던 설교를 다시 듣고 상기하는 '서울의 삭개오'인 나에겐 오늘 설교가 어땠는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묵상하며 새해를 맞이하고 하루를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구하지 않겠는가. 그께나-!
그런 삶은 도대체 어떤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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