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명령이 함께 갈 수 있던가, 일단 결론이야 뭐 "당연히 같이 가는 것이다"라는 말이겠지만 사실 나는 은혜도, 명령도 모두 내게 그다지 썩 유쾌하거나 편한 단어는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돈과 가족, 주변 사람 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셨다, 은혜로.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은 가진 것들을 내놓으라는 명령도 하신다.
"아니, '내가' 이것을 어떻게 이뤄놨는데 이걸 내놓으라고?" 또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벌었는데, 저런 사람들한테 내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등과 같은 반응, 지극히 죄인인 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명령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아직도 '내 것'이 너무나 많으며, 내 가진 것과 인생, 모든 것의 주인이 내가 되고 싶은 욕구가 언제나 흘러 넘치기에. 물론 내가 자란 환경 특성상 노력과 성과가 언제나 요구받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도 과거와 지금의 내 모습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평생 교회라는 것을 다녀왔고, 주일 헌금이나 십일조, 구제 헌금 등은 내게 있어 하나의 '습관'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기쁨으로 드린 적이 거의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오, 내가 이번 달 이만큼을 벌었으니, 옛다 기분이다! 이정도는 내드리지요 하나님, 다음엔 너 많이 '배당'하십쇼" 등과 같은 생각이었다. 마치 나는 투자자, 주주이고, 하나님은 주식회사인 것처럼 내가 적절한 투자금(=헌금)을 줬으니 그에 맞게 더 크고 좋은 것으로 보답하라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처럼 대하곤 해왔고, 그 '주주 심보'는 지금도 여전히 가끔 튀어나오곤 한다, 나도 모르게.
이런 교만한 죄인을 향해서 하나님은 가진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리시거나 뺏어가시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당연하고 공평하다. 그렇지만 그분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셔서 오늘도 이 감사할 줄 모르는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사랑하신다고 또 말씀하신다. 그런 당신을 향해서 할 수 있는 말은 정말이지 "당신은 신실하신 탕부입니다"라는 고백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이시나 스스로 낮추셔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신 성자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내어주셨음을 조금이나마 알아가고 묵상해볼 때, 나는 이 명령도 은혜라는 사실에 뒤늦게서야 감사해본다.
오늘 나는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바라보며 보고 배우고 느끼는가. 오늘 내 다양한 보물은 어디에, 그리고 무엇과 누구에 있는가.
은혜와 돈 4번째 이야기. ●인스타그램: justin_tumana● (2) | 2022.05.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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