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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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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by 이정규)

4장 - "회개하는 마음은 회복을 소망한다 -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 - 실제 예(2)"를 읽었다.

죄라는 것은 죄책감만 주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고통 또한 안겨준다, 나에게, 사랑하는 이들에게, 혐오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하며, 주신 공동체를, 가정을 짓밟고 파괴한다. 죄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회복된 새 생명이 필요하다(p.65). 그래서 저자는 시51:10~19를 이번 장에서 하나하나 뜯어보며 회개하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준다.

4. 마음이 회복되기를 구하기(10~12절)
다윗의 기도가 들어간 시편 51편을 보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완악함, 그리고 일상에서 경건한 백성으로 살아간다 할 지라도 어떤 때에는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용의주도'하신 하나님은 단 한 번의 죄(다윗과 밧세바의 동침)로 임신을 하게 하신다. 단순한 원나잇을 계획했겠지만, 다윗같은 능력있고 힘 있는 왕이라 할 지라도 왕 중의 왕 앞에선 한낱 연약하고 어리석은 백성일 뿐이다. 그리고 그 왕 중의 왕이신 분은 능력과 존귀와 위엄을 모두 지니신 왕이시기에 다윗의 계획을 초월하셨다.

뒤늦게서야 깨닫는다, 자신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죄가 주는 알량한 즐거움에 취해 있었고, 하나님께 매일 제사 드리고 율법을 묵상할 때에도 적극적이지 않고 냉담한 상태로 있었을 것이다. 과연 이게 이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문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나는 그저 나라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이을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이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의 죄를 돌아보면 행동만이 문제가 아닌, 언제든 죄를 지을 준비를 하는 내 마음이 가장 큰 문제다. 이런 죄인들을 향해서 그리스도께서 인용하시면서 외치시는 말씀은, 마 22:37(신6:5).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삶에 그분의 가르침은 온데간데 없다. 나 또한 암송하는 말씀이지만, 한낱 지식 뿐.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다윗처럼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 '구원의 즐거움'과 '자원하는 심령'을 달라고 구하지 않고선 배길 수 없겠다(p.70). 내 스스로 가질 수 없으니, 구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을 진짜 회개의 시작이란다. 회복시켜주소서.

5.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하기(11, 13~17절)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은 영원토록 함께하신다. 그러나 죄 가운데 있는 신자의 마음 안에서 성령님은 스퍼하고 근심하며 소멸하신단다. 결국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도 없어지고, 우리의 심령은 차갑게 메마르고 말아버린다(p.71).
죄를 저지르고 아무런 문제 없이 평온한 날들이 지속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를 절대 잊지 않으시고 다 알고 계시며, 기억하신다 -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삼하 112:27)"(p.72).
죄 가운데 거하는 자에게는 기도해도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차가운 거절감과 성령이 떠난 느낌일 것이다. 그렇기에 다윗은 주의 성령을 자신에게서 거두지 말아 달라고 간구했고.

하나님은 온 우주에서 가장 매혹적이고 탁월하며 아름다운 분이시다. 그분과 비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뿐이다. 다윗은 죄인들을 향한 말씀 전파의 열정과 찬양의 열정을 회복시켜 달라고 구한다. 하나님을 향한 즐거움을 회복시켜 달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찬양과 전도는 기쁨을 수반한다는 사실. 나의 마음 상태는 어떤가, 기쁨과 벅참이 가득한 찬양이 최근에 있었는가, 언제였는가. 그리고 그 때에 그저 나의 기분이 업되어서 그랬던 것은 아닌가, 아니면 어떤 영적으로 엄청난 고양감이 들어서 그랬는가. 나의 힘으로 그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떻게 해야 당신을 당신의 자리에서 끌어내릴지, 내가 그 자리르 어떻게 차지할지 고민하기에도 바쁜데, 죄인이 어찌 스스로 공의의 기준되시는 분을 찬양하며 기뻐한단 말인가. 절대적인 모순일 뿐.

당신을 향한 기쁨이 없는 예배는 당신도 기뻐하지 않으신다. 당신께 냉담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당신은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기뻐하신다. 냉담한 것보다 슬퍼하며 괴로워함으로 당신께 나아오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진정한 복음적으로 회개하는 사람의 간구는 '죄악 속에서 냉담했던 자신의 마음이 상한 심령을 거쳐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구하는 것'이다(p.73~75).

6. 공동체가 회복되기를 구하기(13, 18~19절)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회개란 없다. 지도자의 죄악은 공동체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며, 우리는 주변에서도 목회자들의 타락을 보며 한국 교회가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러기에 그들을 위해서도 또한 기도해야 한다. 모두가 함께 기도하며 회개하는 것에 열정을 달라고 구해야 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죄라 할지라도 죄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에 해를 끼친다. 탐심과 탐욕으로 해를 입고, 거짓으로 인해 시기와 질투, 오해와 험담이 난무한다. 단순히 교회 뿐인가, 회사와 가정, 사회에서도 그 죄는 끝나지 않는다. 내가 혼자 은밀하게 지은 죄라 할지라도 반드시 그것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이웃에게도 영향을 반드시 미친다. 그래서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간구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며 회개의 마지막 단계다(p.77~78).

다윗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고 형벌을 면하는 것만을 원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마땅히 기뻐하고 그분께로 돌이키는 회개를 한다. 이것을 복음적 회개라고 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고, 참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기뻐한 적이 있었기에 교제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행복한 것이 정말 행복인 것일까? 아마 나는 '또 다른 환승거리'를 찾아 헤맸어야 했을 것이며, 그렇게 살다가 비참한 끝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회개는 "다시 나를 사랑하고 기뻐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며, 사실상 그분과의 즐거운 교제로 들어오라는 '위대한 초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기뻐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란 없다. 오히려 무한한 기쁨으로 모두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특권이다. 우리의 진짜 행복을 위한 것은, 하나님 사랑이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진정으로 좋은 말씀이었으며, 이것은 모두의 유익이라는 사실. 그저 하나님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이것이 회개다(p.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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