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를 사랑할 수 있을까? (by 이정규)
5장 - "하나님께 회개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를 읽었다.
도저히 내 선에서 용서하기 어려울 정도의 무언가를 내가 당했다면, 그리고 용기내어 용서를 하려고 찾아갔는데 자신이 "용서받았다"라고 먼저 선언해버린다면 정말이지 얼마나 죽이고 싶고 치가 떨릴까. 말이 좀 과격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여기는 익명의 힘을 빌려 만든 내 공간이고 내가 아무 말이나 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기에 가능한 필터링 없이 속에 든 것들을 용기 내어 꺼내려고 하니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
내가 받은 군면제에 크게 한 몫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기만 해봐도 이 책의 저자가 영화 밀양의 예를 들었던 것은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그곳에서의 1년 반 동안 이야기를 자세하게 부모님께만 말씀드렸을 때 그렇게 이성적이던 아버지가 극대노하여 당장이라도 그 집사를 찾아가서 다 때려 부술 기세였고 실제로 어떤 법적이거나 다른 조치를 취하려고 했었고, 어머니는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다. 우리 가족과 그들 사이에 엮여있는 여러 가정들과의 문제가 왜 있었는지 알 것 같다고는 하셨지만 내가 저질러왔던 자잘하지만 잦은 잘못들에 비해서 비정상적으로 가혹하게 대한 것들에 대해서 이해는 하지 못하셨다.
한 달에 백만원에 가까운 생활비를 내면서 1년이 넘게 머슴역할을 하다보니 원치 않게 벌크업을 해버리기도 했고. 그냥 잘 모르겠다, 쌍방과실인건 인정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나 자신이다보니깐 내가 당한 것이 더 크게만 느껴지고, 선교사님 부부는 고생 많이했다며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냐고, 얘기했으면 도움이라도 줬을텐데 괜히 당신들이 정말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마 그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서 필리핀, 특히 그 지역은 또 다시 처음처럼 지옥같고 역겨운 곳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면 아마 나는 갈 때 싸울 준비를 하고 가거나 아니면 그냥 더러우니 피하자는 식으로 몇 년간 내 친구들에게조차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 같다.
문제는 내가 당한 것만 생각하면 세상엔 정말이지 '죽일 놈들' 천지라는 것이다. 나 자신또한 이것보다도 더 큰 상처를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 다녔으며,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마음에 대못을 수도 없이 박았다. 이에 성경은 그런 모든 죄를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셨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혀주면서 또한 죄를 지은 상대방에게 가서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하나님뿐만 아니라 나의 죄를 당한 사람에게도 가서 회개하라니! 정말이지 당연하면서도 동시에 부끄럽다. 내가 누군가에게 용서를 해야하는 입장이라면 그들이 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왜 이제서야 회개하냐는 생각을 하기도 하겠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해야하는 입장이라면 그 용서를 구하는 길은 너무나도 험난하다. 내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고, 나보다도 낮게 여기던 그 앞에 내 자신을 낮춰 잘못했다며 용서를 부탁하고.
잘못한 것을 가지고 그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려워보이지 않는다, 후일을 도모하면서 이를 갈면서 하는 억지 회개도 있으니깐. 그렇지만 정말 어려운 부분은 용서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진정성이라는 엄청난 소스를 추가하는 것이다. 이 소스는 엄청난 나의 낮아짐을 요구한다. 다른 무언가로 잘해서 잘못을 상쇄시키려고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 아니며, 진노와 미움을 유발할 뿐이다. 정직하게,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어렵다. 그리고 사과하는 것만큼 용서하는 것도 어렵다. 도저히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겠을 때, 내가 그어놓은 선을 씨게 넘거나 밟을 때 그 사람을 향해 느끼는 적대감과 환멸감, 어떻게 개망신을 줄지 고민하는 그런 것들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올 때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정말 힘들다.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까지 주신 분이신데, 원수들간의 모임을 당신 안에서 허락하신 분인데 유독 그런 때에 그 근거를 주시고 허락하신 분이 도저히 보고싶지가 않다.
"주님, 잠시만 눈 감아주세요, 잠시 복수좀 하게" 라는 식으로 죄와 타협하기에 바쁘다.
이웃에게 지은 죄에 대한 회개는 단순히 말로만 끝내는 것이 아닌, 배상과 행동으로 드러내야 한단다. 이것은 곧 피해를 당한 사람의 복지와 관계 회복 모두를 바라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배상해 주어야 한다. 회개란 결코 쉽지 않지만, 동시에 나의 교만함을 내려놓을 것을 철저하게 요구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용서받지 못할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런 상대방의 진정성을 보고도 지난 전적들이 생각나면서 애써 꺼1지라는 식으로 나올 때가 정말 많다. 어떻게 해야할까, 이런 때에는.
아쉽게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새로운 방법은 없다. '진부하지만 너무나 뻔하다고 생각하는 분, 그러나 진정한 용서의 근거가 되는 분'이 맞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이미 형벌을 면제받은 자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명령을 지키기 위해 이웃에게 죄를 고백하고 배상을 하는 것이란다. 자신을 낮추며 겸손히 상대방에게 자기 죄를 고백하는 동시에 상대방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에게 용서를 베풀어주기를 간구해야 한다. 진실된 회개 고백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하나님께 진실하게 고백했다 해도 용서받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이번 장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회개의 결과는 이웃사랑이라는 사실,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물질을 털어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 회개가 자기중심성에서 탈출하는 것이고, 참된 회개는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회개의 본질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뜻한단다. 자아를 숭배하는 것에서 참된 예배로 가는 길은 정말이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되지가 않기에 오늘도 당신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선 용서를 구하는 것도, 하는 것도 안되는구나. 겸허히 회개하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오늘도 배웠지만, 솔직히 다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분명 좋은 가르침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또 머리에 떠오르는 누군가들을 향한 혐오감과 적대감,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이미 답을 알기에,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알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애써 몸부림치며 하나님을 거부하려는 것, 얼마나 찌질하고 추한가. 근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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