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신학자인 데이비드 웰스(david f. wells)는 ‘복음주의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자신의 저서에서, 지난 몇 세기 동안 서구사회는 조용하고 강력한 ‘혁명’을 겪어왔다고 주장한다. 서구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던 무엇인가가 사라졌다.
어떤 이는 그것을 ‘신의 죽음’이라고 불렀고, 어떤 이는 그것을 ‘존재망각’이라 불렀고, 어떤 이는 그것을 세계의 ‘탈주술화’ 라고 부를 터이지만, 무엇인가가 그들로부터 사라졌다는 것은 예언가를 대체한 서구의 지성인들이 모두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사회 심리학자인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ernst-dieter lantermann)은 “오늘날의 시대에는 확실함이란 도둑맞은 미덕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불확신과 불확실함은 매일매일의 경험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현대이전 시대의 사람들을 종교적인 인간으로, 현대시대의 인간들을 비종교적인 인간으로 구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교적인 인간은 절대적인 실체의 실존을 믿는다. 우리의 세계를 초월하면서 우리의 세계에 나타나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세계를 거룩하고 실재로 만드는 거룩의 존재 말이다…무종교적인 인간은 초월을 거절하며, 실재의 상대성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이 실존(existenz)의 의미도 의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러 학자들이 말하는 피상성과 허무성, 그리고 불확실성을 맞닥뜨리게 된다. ‘의존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이 혁명에는 주체도 없고, 목적도 없으며, 총성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일으키는 파급은 막강했으며,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혁명과 달리, 이 우연한 혁명은 자의식적인 이데올로기나 혁명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늘날 혁명을 주도하는 사람은 실제로 보통 사람들인데, 대부분은 스스로가 혁명적인 변화의 선동가와 대리자로 일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참으로 가장 평균적인 미국인이 이 같은 세계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물론 방금 말했듯 이 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함의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의견을 달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빠른 속도의 정신세계의 변화가 실존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쏟아지는 목회에 관한, 기독교에 관한 서적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절대성과 혹은 초월성과 멀어지려고만 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기독교의 진리를 납득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래학자인 최윤식은 이미 쓰여 진지 꽤나 오래된 그의 한국교회의 미래에 관한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혼란’ 현재 한국 교회를 표현하는 단어다. 한국교회는 지금 위기이자 변화의 시기이고,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사회와 교회의 지성인들은 모두 자신들의 혼란의 눈앞에 서 있다고 증언한다. 이런 흐름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교회는 말살될 것이라고 보았다. 종교는 종말을 고하고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세속주의의 예언자들이 외쳐대었다. 그러나 역사는 정반대의 결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미국 철학 계에서 세속주의를 논박하는 기독교 학자들이 등장하였고, 전 세계적으로 종교는 꾸준히 성장세에 있다. 분명 서구사회에서 여전히 세속 주의적 관점이 힘이 강하고, 전통적인 도덕이 붕괴되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거기에다 미국의 많은 신학자들이 지적하듯이 ‘복음주의’라는 보수적 개신교의 중심점이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디머 장로교회의 전 담임목회자였던 팀 켈러가 보수주의 신학을 가지고 뉴욕과 같은 가장 세속화된 도시에 개척을 하고, 사회적으로도 영향력이 있는 교회로 성장하는데 성공함으로서, 보수적 개혁신학을 견지하고 있는 현대 교회에 희망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세속화된 도시가 선교지이며, 이 상황이 우리에게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대임을 보여준 것이다. 팀 켈러는 성공적인 사례를 남긴 목회자중 한 사람일뿐 아니라, 도시선교에 대한 일종의 실천신학적 원리를 자신의 저술을 통해서 남기기도 하였다. 그가 제공했던 목회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는 바로, 신학적 원리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 것인가에 관한 부분이다. 그는 이것을 상황화(contextualization)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용어상 적응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팀 켈러는 이 용어를 통해서 문화에 대해서 도전해야할 측면과, 적응해야할 측면을 동시에 강조하고자 한다. 그는 이런 상황화 과정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정리한다.
(1). 문화 속으로 들어가서 그 문화가 던지는 질문들과 희망들, 신념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2). 문화가 성경적 진리와 부딪히는 부분들과 맞서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소망이 어떻게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단순히 문화의 열망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것들을 긍정하면서도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내적인 모순들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에 맞섰다.” 즉, 각각의 문화마다 각자의 우상과 오류를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찾아내야하며, 그것에 대해서 성경의 진리로 도전해야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 그 문화의 좌절된 욕망이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됨을 가르쳐줘야한다. 이런 논의를 배경으로 필자는 본 글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1. 세속화 사회로서의 한국을 분석하고자 먼저, 신학과 철학과 심리학과 종교학의 관점에서 세속사회의 변화를 논하고, 이러한 세속화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관찰하고,
2. 성경적이며, 개혁주의적인 신학이 세속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사회에서 어떤 형식의 대답을 제공할 수 있으며, 그 대답이 어떤 공동체의 형식과 가르침의 형식으로 사회에 제공될 수 있는지 한 번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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