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사회에서 일어난 종교의 변화는 사회 문화의 구조에 상당한 변혁을 가져왔다. 이것을 두고 데이비드 웰스는 ‘혁명’이라고 일컬은 것이다. 그렇다면 신관이 변화된 사회에는 어떤 종류의 변화가 일어났는가? 맑스주의 문화비평가인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은 문화에서 종교의 추방과의 관계를 묘사한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를 완전히 없애버릴 때가 아니라 종교 때문에 특별히 동요하게 되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때 사회는 세속화된다.”
동일한 의미에서 복음주의 신학자 데비이드 웰스도 교회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의 특징적인 표지는 하나님이 이제 더 이상 무겁지 않다는 점이다…하나님은 인생에 대해 그 중요성을 상실했다. 자신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설문 조사자에게 말하는 사람들도 하나님보다 TV에 더 큰 흥미를 느끼고, 하나님의 명령보다 부와 권력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하고, 하나님의 심판보다 저녁 뉴스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진리보다 아부와 거짓이 난무하는 광고의 감미로움을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인다.”
테리 이글턴은 세속화의 과정을 무신론의 사상적 봉기라고 인식 하기보다는, 사회를 통합시키고 있었던 종교의 공백을 무엇이 매웠는가 라고 질문하면서 자신의 저서를 시작한다. 종교의 역할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였으며, 무엇으로 대체되었는가?
2-1.미국의 어느 도시 웨넘의 변화
데이비드 웰스는 특별히 미국의 세속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서 미국의 여느 마을과 같이 초기에는 청교도 적인 신앙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던 웨넘이 어떻게 세속화 되었는지를 묘사한다. 이 도시는 영국계 이민자들이 정착한 마을로서 19세기의 이민자 물결에도 많은 변화를 겪지 않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산업적인 부분에서도 현대사회에 불어 닥치는 변화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조용하고, 목가적인 도시였다.
그리고 이 도시의 중앙, 지리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중앙에 교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에서 교회는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교회 옆에는 시청이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데이비드 웰스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렇게 해서 웨넘 시 중심가의 양편에 사회생활의 두 중심이 등장했다.
이것은 구질서가 훨씬 심하게 파괴될 것이라는 상징이었다. 그것은 기독교의 확고한 사실들을 기초로 틀을 갖추었던 예전의 인생관은 영구히 물러날지 모르고, 세속성에 물들어 그런 ‘확고한 사실들’을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갈 삶의 방식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상징이었다.” 당시의 교육은 암기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과, 여성들의 도덕적인 견고함과 신앙적 확신으로 특징지어진다. 당시의 이상적 여성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첫 째는 경건이었다...두 번째 덕목은 순결이었다...세 번째 덕목은 남자에 대한 복종이었다...남성에 대한 복종은 동등한 파트너에게 다른 역할을 할당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마지막으로, 가정 살림살이 덕목에 있었다.”남성들은 일찍 성인의 책임을 부여받는 사회적 특성으로 인해서 변화되는 사회의 밀어닥치는 진보의 물결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지만, 여성들은 그런 변화의 뒤편에서 이전세대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을 지키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즉, 이전의 전통과 정신세계들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은 가정이었다. 그리고 또한 교회는 그들의 삶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개인의 생각들과 공공 생활 사이에 넘어야 할 어떤 분열이 없었다. 한 쪽 영역은 다른 쪽 영역과 확실히 일치하고 연계되었다. 가정적인 일들과 직업상의 일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업적인 거래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마을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이 똑같은 사람들이었으며, 마치 유리처럼 투명했다.”
그들은 먼 곳으로 여행을 잘 떠나지 않았고, 자신들의 마을을 하나의 완전하고 유기적인 공동체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웨넘은 하나의 마을로서 그 영역을 규정하는 경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경계는 지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심리적이며, 경제적이며, 조직체적인 것이었다. 그 경계선들은 그들의 집단생활의 영역을 표시해 주는 표지판들이었으며, 일상의 사건들이 합류되는 통로였으며, 그 생활의 사회적 경험을 정의해 주고 동시에 외부 세계로부터 그 마을이 독립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앞에서 인용했듯 종교학자인 엘리아데는 종교적인 인간과 비종교적인 인간의 차이를 바로, ‘거룩’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존재, 즉 실제의 중심에 서서 실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거룩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존재하는데, 하나는 공간이고, 하나는 시간이다. 그는 고대인의 공간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신전에 대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그것은 단순히 이 세상의 형상을 반영할 뿐 아니라...천상의 원형의 복사본이기도하다.”이 천상의 원형은 지상의 것들이 자신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중심이 되며, 세상을 거룩하게 만들어주는 중심이 된다. 바로 웨넘에서 교회가 이런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대인의 세계관과 웨넘인의 세계관이 동치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들이 교회를 자신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초월적인 매개체라고 생각했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는 엘리아데가 말한 공간의 중심, 즉 거룩한 공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간의 경계들과 지역 공간의 중심성은 이동수단의 발달과 매체의 발달로 인해서 사실상 무의미한 것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웨넘은 보스턴이라는 대도시의 발달로 인해 그곳으로 흡수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들은 점차 지역 간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웰스는 우리가 쓰는 물건이 상징적으로 우리의 변화된 정신세계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전 시대의 물건들은 장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들었으며, 그것은 오랜 시간 쓸 것들이었고, 부모세대에서 자식의 세대에게로 물려주는 물건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인의 물품들은 모두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버려지는 것들이다. 그와 같이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는 자발성 혹은 이익에만 묶이게 되었으며, 결혼이라는 관계조차 매우 유동적인 것이 되었다. “과거의 웨넘 사람들에게는 새 것이라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지속되는 것이 거의 없다...그들은 영구적인 주민이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유랑민이다.”
그리고 이런 시공간의 경계와 거리가 무의미해짐에 따라서, 전 세계는 동일한 문화의 영향권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산업화와 세속화의 물결은 사회와 인간의 정신세계에 여러 가지 변화를 일으켰으며, 지금도 일으키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렇게 새로운 것인가?
#신학생 #개신교 #세속화 #선교 #변증 #무신론 #유신론 #현대 #신학 #철학 #사회학
Climacus) 세속화와 교회의 응전(6 of 6) (0) | 2022.06.02 |
---|---|
Climacus) 세속화와 교회의 응전(5 of 6) (1) | 2022.05.19 |
Climacus) 세속화와 교회의 응전(4 of 6) (0) | 2022.05.11 |
Climacus) 세속화와 교회의 응전(2 of 6) (0) | 2022.04.28 |
Climacus) 세속화와 교회의 응전(1 of 6) (1) | 2022.04.21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