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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째 이야기 - 비통함에 맞서 싸우기(Cha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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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 -

비통함? 잘 모르겠다.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슬퍼하여 울부짖다'라는 뜻이던데, 이런 적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었더라.. 아직까지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도 본 적이 없었고, 가까운 사람이 떠났을 때, 내가 철저하게 계획했던 나의 진학에 관련된 일들이 무너지고, 어쩔 수 없이 시광에 왔을 때가 그나마 가장 큰 비통함과 화남이었던것 같고 음... 또 뭐가 있었더라.. 기억도 잘 안난다. 아직까지 삶이 무너지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거의 없었기에 감사하지만, 그러나 내가 앞으로 그런 상황들을 마주칠 때, 어떻게 하나님을 기억하며 자신있게, 멋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설령 찌질해보이더라도 어떻게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을까. 어떻게 나의 모든 행사를 여호와께 맡길 수 있을까, 이번 챕터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것일까.

읽으면서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라고 명령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그분은 100% 선하시기에 가능하셨고, 그 가장 큰 증거가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리심이었지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단순히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교회를 향해 비난과 조롱을 하는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원수들은 참 많다. 맞선배, 맞맞선배처럼 귀찮고 괴롭게 하는 사람들도 교회에 많고, 내가 누군가에겐 그럴 수도 있을테니깐. 이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참 어렵다. 그저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여러 선배들에게 불의를 당하기도 했고, 그들이 졸업을 해서 떠날 때에는 내가 그들을 '심판'했기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들을 놓아주는건 정말이지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내 정욕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나 또한 어느 누구와 다를 바 없이 정의감이 있다. 때로는 넘치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정의구현이라는 것을 실행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나에게는 도파민을 분비시켜주는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게 뭐가 잘못이지? 분명 나는 그 당시에 좋은 일을 했다고 믿었고, 확신했다. 그 때에도 여전히 "용서하라, 또 용서하고 화를 먹어 삼켜라"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고 또 들었지만 그 말은 나의 고집이라는 방패에 튕겨져 나가버렸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준이 아니라 이건 아예 말부터 막아버리고 나를 정당화하기에 바빴다. 나름 나는 선을 행했다고 믿었지만, 여전히 또 다른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함으로 죄를 지었다. 이 중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죄인이 되어버린다. 내 의를 채우려는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아버렸다(약1:15). 여전히 어느 누구도 의롭지 못하고, 옆에서 보고만 있던 방관자들마저도 죄인이다. 그 죄를 보며 멋있다, 착하다, 화끈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으니. 역시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구나(롬3:10).

원한을 품었다, 하나님의 선하고 공의로운 심판은 저 멀리 걷어차버린 채, 내가 그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해 '선(악)'하고 '공의(불의)한' 심판을 내려버렸다. 교회는 다녔지만, 이건 그냥 잎사귀마저도 없는 썩어버린 무화과나무였구나.

교회 안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답답한 사람들이 많다. 불편한 사람이 없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화조차도 섞고 싶지 않은 원수들은 꽤 많다. '분명히 저건 쓰잘데 없는 고집이고 편견인데, 왜 저걸 못버릴까? 그냥 한 번 비꼬는 소리 하면서 짓눌러 뭉개버리고 싶다'라는 생각도 하고, 다만 이전보다 횟수가 줄어들었을 뿐 그런 생각은 여전히 한다. 사람이 사람과 약속을 한 것에 대해서 지키려는 노력 또는 지키지 않았거나 못했을 때 나와야하는 그런 '당연한 사과'가 나오지 않을 때, 나는 속으로 정말 분노한다. 그리고 이런 출력을 한다, '넌 이렇게 몇 번만 더 하면 너랑은 친해지기 힘들겠다'. 내가 실수하고 잘못하는 것들은 생각하지 않은 채, 이런 나만의 온전하지 못한 기준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정죄하며 그것들을 고집한다는 것은 까맣게 잊은채 나 또한 잘못을 잘못으로 대한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모습이 없진 않지만, 이해를, 용서를, 긍휼을 베풀어주심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선하시고 좋으신 하나님이신지 감도 안온다. 분리수거도 안 되는 나는 '변화를 당한다', 나의 어떠함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부르러 오시고, 죄인들을 의롭다 하시기 위해 자기 피흘림으로 사심으로. 악으로 선을 이기는 나, 그 반대로 선으로 악을 이기시는(롬12:21)하나님은 내 상식에서 얼마나 이해가 되지 않는가, 그리고 동시에 나에겐 없는 '그것'을 갖고 있다니, 오묘하게 끌린다.

이런 죄를 위하여 싸워주는 여호와(출14:14)는 참말로 좋으신 하나님이다.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며, 인자와 진실이 많으신 하나님(출34:6)께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당신께 있을 뿐이다(대하29:11). 우리가 '먼저 믿어서' 용서함을 얻어낸 거래가 아닌, 먼저 용서하시고나서 믿게 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다.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죄에 빠져 죄로 죄를 다스리는, 나 혼자만 천국에 있는 고통스럽고 답도 없는 외롭고 고독한 세계관에서 죄를 이기고, 서로가 서로를 겸손하게 섬기고 사랑함으로 모두가 행복한 진정한 유토피아를 이뤄가는건 아닐까. 그런 세상을 소망하며 사는 장래의 은혜를 기대하며 사는 것이 진짜 세계, 영원한 삶은 아닐까. 여전히 믿음이 없지만,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소서!(막9:24)"의 고백으로 겸손하게 나아가 공의의 하나님을 기대하며 살아보는건 어떨까. 우선 기도를 시작하며 도우심을 구해보며 나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보는건 어떨까.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롬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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